Open Pages

OPEN PAGE 03

왜 우리는 기다리지 못하는가

말씀의 숲 주제호 02 · 《기다림과 때》 · SECTION 01 아직, 오지 않은 시간에서 이어지는 글

기다림은 아직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이미 여러 곳을 다녀왔습니다.

"아직"이라는 말 앞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쉽게 흔들릴까

별일 없는 오후였습니다.

문자 하나를 보냈습니다.

답이 없습니다.

처음 몇 분은 아무렇지 않습니다.

조금 지나 휴대전화를 다시 봅니다.

새 메시지는 없습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확인합니다.

여전히 없습니다.

그제야 생각이 시작됩니다.

무슨 일이 있나. 내가 뭔가 잘못 말했나. 왜 답이 없지.

기다림은 아직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은 이미 여러 곳을 다녀왔습니다.

기다리는 일이 힘든 것은 단지 오래 걸리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병원 검사 결과를 기다릴 때가 있습니다. 지원한 곳의 연락을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마음이 돌아오기를 기다릴 수도 있고, 관계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시간을 지나기도 합니다. 열심히 준비한 뒤 결과 발표일을 기다릴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훨씬 작은 기다림도 있습니다. 늦는 사람을 기다립니다. 배달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전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립니다. 화면이 열리기를 기다립니다.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하루에는 생각보다 많은 기다림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기다림은 금세 잊히고, 어떤 기다림은 하루 전체를 붙잡아 버립니다. 왜 그럴까요.

기다리고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을 때

기다림 속에서는 이상하게 시간이 비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답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상대의 마음은 내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당길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언가를 해 봅니다. 한 번 더 확인합니다. 메일함을 새로고침합니다.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내려놓습니다. 예정 시간을 다시 봅니다. 검색해 봅니다. 누군가에게 묻습니다.

때로는 이런 행동이 필요합니다. 확인해야 할 것은 확인해야 합니다. 도움을 요청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결정하거나 움직여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확인해도 달라지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 화면을 열어도 여전히 `아직`. 한 번 더 물어도 `아직`. 조금 더 애써도 `아직`.

그때 기다림은 단순히 시간이 흐르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과 마주하는 시간이 됩니다.

어쩌면 우리가 견디기 어려워하는 것은 바로 이 `아직`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많은 것을 기다리지 않게 되었다

물론 우리의 일상에서 기다림은 많이 줄었습니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바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멀리 있는 사람에게도 곧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 있습니다. 택시가 어디쯤 오는지 볼 수 있고, 주문한 음식의 도착 시간도 알 수 있습니다. 보고 싶은 영상이나 듣고 싶은 음악도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우리의 삶을 실제로 편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기다림이 힘들어진 이유를 단순히 “사람들이 요즘 참을성이 없어졌다”고 말하면 너무 많은 것을 놓칩니다. 어쩌면 우리는 기다리지 않는 경험에 조금 더 익숙해진 것일 수도 있습니다. 답이 빠르게 나타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에, 답이 나타나지 않는 순간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술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사람은 오래전부터 결과를 알고 싶어 했고,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을 기다렸으며, 내일을 걱정했습니다. 다만 우리가 기다림을 경험하는 환경은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변화 속에서 오래된 질문이 새로운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납니다.

왜 아직이지?

기다림에는 언제나 질문이 따라온다

기다리다 보면 우리는 시간만 세지 않습니다. 해석하기 시작합니다.

왜 늦어지고 있을까. 이 기다림은 언제 끝날까. 내가 잘못한 것이 있을까. 조금 더 노력하면 빨라질까. 이대로 있어도 되는 걸까. 포기해야 할까. 계속 기다려야 할까. 움직여야 할까.

어쩌면 기다림이 어려운 것은 시간을 보내야 해서가 아니라, 그 시간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끝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결과가 무엇인지 모릅니다. 지금의 선택이 맞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같은 하루도 다르게 느껴집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한 시간은 짧습니다. 연락을 기다리는 한 시간은 길 수 있습니다. 달력의 하루는 모두 같은 크기인데, 우리의 하루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간은 지나가지만 마음은 자꾸 미래로 달려갑니다. 아직 오지 않은 답을 먼저 알고 싶어 합니다.

기다리지 못하는 것과 기다리기 싫은 것은 같을까

여기에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기다림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당한 지연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무책임 때문에 기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위험한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조금 더 기다려 보라”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과 기다림은 반대말이 아닙니다. 행동하는 것과 기다림도 반대말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번 호에서 말하는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버티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앞으로 여러 종류의 기다림을 구별해 보려 합니다.

움직여야 하는 기다림이 있고, 말해야 하는 기다림이 있고, 울고 기도하는 기다림이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를 앞당길 수 없는 기다림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각각의 시간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질문을 만나게 됩니다.

아직 답을 내리지 않으려 한다

어쩌면 우리는 기다림에 너무 빨리 의미를 붙이고 싶어 하는지도 모릅니다.

“다 이유가 있을 거야.” “조금만 참으면 좋은 일이 생길 거야.” “때가 되면 다 알게 될 거야.”

그 말들이 누군가에게 힘이 될 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모든 기다림을 그렇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오래 기다렸는데도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더 아파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끝내 이유를 알지 못하는 시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는 시작부터 기다림을 아름다운 것으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반대로 조급함을 나쁜 성격이라고 꾸짖고 싶지도 않습니다. 먼저 그 자리에 조금 머물러 보려 합니다.

답이 아직 없을 때. 시간을 당길 수 없을 때. 무엇을 해야 할지 확신할 수 없을 때. 그런데도 오늘 하루는 살아야 할 때.

그 자리에서 인간은 무엇을 경험할까요. 우리는 왜 그렇게 미래를 먼저 알고 싶어 할까요. 기다리는 동안 탄식하고 질문하는 것은 믿음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기다린다는 말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디에서 갈라질까요. 그리고 내 힘으로 결과를 결정할 수 없는 시간에도, 오늘 해야 할 일을 살아낼 수 있을까요.

아직 답하지 않겠습니다. 이번 호는 바로 그 질문들 속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당신에게도 지금 하나의 `아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먼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말씀의 숲》 주제호 02 『기다림과 때』 공식 앞표지

Book Connection

기다림과 때

이승주 · 퍼플 · 115쪽 · 말씀의 숲 주제호 02

책에서 읽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