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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에서 숲으로

에세이 · 교보문고 · 《말씀의 숲》 11장에서 이어지는 글

물길을 내는 터널에서 생명을 기르는 숲으로의 전환.

1. 터널은 물길이었다

이 생태계에 처음 붙은 이름은 '말씀의 숲'이 아니었습니다. '히스기야터널'이었습니다.

이름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흩어져 있던 여러 작업들 — 자료를 찾아내고, 정제하고, 검색하고, 연구하고, 설교로 빚어내는 일들 — 이 사실은 따로따로의 프로젝트가 아니라 하나의 흐름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그림은 물길이었습니다.

히스기야터널이라는 이름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을 위한 물길을 내는 이미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이 생태계의 시작이 그와 닮아 있었습니다.

히스기야터널이라는 이름은 정확했습니다. 자료를 찾아 정제하는 일은 샘을 파는 일과 같았고, 검색하고 연결하는 일은 그 물길을 따라 흐르게 하는 일과 같았습니다. 이름이 가리키는 것은 분명히 '길'이었습니다. 물이 흐르도록 만든 통로.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이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 숲은 생명이 자라는 자리다

터널은 물을 끌어오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물이 마침내 닿는 곳, 그 물로 인해 무엇이 자라나는지는 터널이라는 이름만으로는 보여 주지 못합니다.

터널은 물을 길어 올렸습니다. 숲은 그 물이 흘러 생명을 이루는 자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 생태계도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물길을 내는 일 자체가 목표처럼 보였습니다. 자료를 정제하는 일, 검색이 가능하게 만드는 일, 도구들을 연결하는 일 — 이런 작업들이 쌓여갈수록, 정작 그 물이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를 다시 물어야 했습니다.

답은 분명했습니다. 그 물은 목회 연구를 위한 것이었고, 설교 준비를 위한 것이었고, 교육과 나눔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물길 하나만으로는 이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었습니다. 물이 흘러 들어가, 거기서 나무가 자라고 열매가 맺히는 더 넓은 공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터널은 물을 길어 올렸습니다. 숲은 그 물이 흘러 생명을 이루는 자리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것이 '말씀의 숲'이라는 이름이 태어난 이유입니다. 히스기야터널이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 물길은 여전히 이 생태계 안에서 흐르고 있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 물길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 끝에서 무엇이 자라는지를 함께 말할 수 있는 이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숲은 나무 하나, 길 하나가 아니라 모든 요소가 함께 살아가는 공간입니다. 말씀의 숲이라는 이름은 그 살아 있음을 가리킵니다.

3. 앱은 입구이고, 생태계는 숲이다

이름이 바뀌면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사람들이 실제로 만나고 사용하는 앱과, 그 뒤에 있는 더 넓은 생태계를 구분하는 일이었습니다.

말씀의 숲의 입구는 여러 연구와 자료 흐름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누군가 말씀의 숲 앱을 열어 본다면, 그 사람이 보는 것은 숲 전체가 아닙니다. 숲으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검색창 하나, 질문을 던지는 화면 하나가 숲의 전부일 수는 없습니다. 그 너머에는 오랜 시간 쌓아 온 연구의 방식, 자료를 정제하는 과정, 자료들이 서로 연결되어 의미를 이루는 구조,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다시 설교와 삶으로 이어지는 순환이 있습니다.

이 구분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능을 과장하지 않으려는 태도이기도 하고, 동시에 세계관을 축소하지 않으려는 태도이기도 합니다.

기능은 정확하게 제한하고, 세계관은 넓게 설명한다.

이것이 이 생태계가 스스로에게 지키려 한 원칙입니다. 앱이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하고 제한적입니다. 질문을 받고, 자료를 찾아 연결해 보여 주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작은 입구 뒤에 있는 세계관은, 말씀을 깊이 연구하고 싶어 했던 한 목회자의 오랜 갈망과, 그 갈망이 자라온 길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앱은 입구입니다. 생태계는 숲입니다.

4. AI는 설교자를 대신하지 않는다

이 구분을 분명히 해야 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앱이 곧 숲 전체라고 오해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 작은 입구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 기대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자칫 가장 위험한 오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AI가 본문을 해석하고, AI가 설교를 결정한다는 오해입니다.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하고 싶습니다. AI는 목회자를 대신해 본문을 해석하지 않습니다. AI는 목회자를 대신해 설교를 선포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숲이 하는 일은 다릅니다. 자료를 찾아 연결해 주고, 흩어져 있던 통찰들이 서로 말을 걸게 해 주고, 더 깊은 질문을 길어 올리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러나 그 질문 앞에서 본문을 읽고, 그 본문이 말하는 것을 분별하고, 회중 앞에서 그것을 선포하는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 목회자의 몫입니다. 이것은 양보할 수 없는 책임이며, 이 생태계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AI를 잘 사용한다는 것은, AI에게 더 많은 일을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목회자가 더 깊이 묻고, 더 천천히 분별하고, 더 책임 있게 말하도록 돕는 환경을 세우는 일입니다. 말씀의 숲이 추구하는 것은 빠른 답이 아니라, 말씀 앞에 더 오래 머무는 시간입니다.

5. 말씀의 숲이라는 이름

터널에서 숲으로 이름이 바뀌는 동안, 이 생태계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함께 분명해졌습니다.

이것은 검색이 빨라지는 도구가 아닙니다. 자료가 많이 쌓이는 저장소도 아닙니다. 말씀의 숲은 한 목회자가 본문을 깊이 연구하고 싶어 했던 마음에서 시작되어, 그 연구가 설교가 되고, 설교가 다시 교육이 되고, 그 모든 것이 나눔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을 보여 주려는 이름입니다.

터널이 길을 냈다면, 숲은 그 길 끝에서 무엇이 자라야 하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자람의 자리에서 가장 중심에 있는 것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까지나, 말씀 앞에 서 있는 목회자입니다.

말씀의 숲은 기술의 이름이 아닙니다. 목회자가 말씀 앞에 더 오래 머물고, 그 말씀의 생명이 교회와 삶으로 흘러가기를 바라는 목회적 소망의 이름입니다.

《말씀의 숲》 공식 앞표지

Book Connection

말씀의 숲

이승주 · 퍼플 · 86쪽 · AI를 자동 응답기가 아닌 말씀 연구 환경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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