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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이라는 말과 함께 사는 하루
아침에 눈을 뜨면 손이 먼저 휴대전화로 간다.
아침에 눈을 뜨면 손이 먼저 휴대전화로 간다.
알람을 끄기 전, 화면 위에 쌓인 알림 몇 개를 훑는다. 밤사이 도착한 단체방 메시지, 광고, 어제 주문한 물건의 배송 알림. 기다리던 이름은 없다.
화면을 끈다.
아직.
그 한마디가 아침에 제일 먼저 도착한다.
그렇다고 아침이 멈추는 것은 아니다.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냉장고 문을 열고, 식빵을 꺼낸다. 물이 끓는 동안 컵을 하나 씻는다. 창밖은 이미 밝아지고 있고, 어제 벗어 둔 옷은 의자 등에 그대로 걸려 있다.
기다리는 일이 있다는 것과 오늘 아침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이상할 만큼 나란히 놓여 있다.
어떤 기다림은 끝나는 시간을 알고 있다.
전자레인지의 숫자는 줄어든다. 신호등은 곧 바뀐다. 엘리베이터는 몇 층에 있는지 표시된다. 버스가 몇 분 뒤 도착하는지도 화면에 뜬다.
그런 기다림에는 끝을 짐작할 수 있다는 작은 안도감이 있다.
하지만 어떤 '아직'에는 숫자가 없다.
언제 답이 올지, 일이 어떻게 될지, 기다리는 것이 결국 어떤 이름을 갖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런 기다림은 하루의 한 시간을 차지하기보다 하루 밑에 조용히 깔린다.
출근을 하고, 컴퓨터를 켜고, 해야 할 일을 펼친다.
메일함을 한 번 확인한다. 새 메일이 몇 통 와 있다. 기다리던 메일은 아니다.
문서를 하나 열고, 몇 줄을 고친다. 전화를 한 통 받고, 메모를 남긴다. 물을 마시러 일어났다가 돌아오며 다시 화면을 본다.
아직이다.
일은 계속되는데 마음 한쪽은 자꾸 같은 문 앞을 지나간다.
열리지 않은 문이라고 하루 종일 그 앞에 서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한다. 해야 할 답장을 하고, 미뤄 둔 파일을 정리하고, 점심시간이 되면 밥을 먹으러 간다.
누군가 별 뜻 없이 묻는다. “그거 어떻게 됐어?”
대답은 짧다. “아직.”
그 뒤로 대화는 금세 다른 데로 흘러간다. 오늘 국이 조금 짜다는 이야기, 주말 날씨 이야기, 다음 주 일정 이야기.
내게는 하루의 배경처럼 계속 남아 있는 일이 다른 사람과의 대화에서는 두 음절로 끝난다.
아직.
말하고 나면 그 일이 조금 작아진 것 같다가도, 자리에 돌아와 앉으면 다시 원래 크기로 돌아온다.
오후에는 휴대전화가 한 번 울린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화면을 켠다. 택배가 도착했다는 알림이다.
괜히 웃음이 난다. 별것 아닌 알림 하나에도 마음이 먼저 기대 쪽으로 기울었다가 돌아온다.
기다림은 생각으로만 하는 일이 아닌 것 같다. 휴대전화가 울릴 때 고개를 드는 일이고, 메일함을 새로고침하는 손가락이고, 지나가다 시계를 한 번 더 보는 일이다.
그러다가 다시 하던 일을 한다.
시간은 묘하다.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린다고 해서 더 빨리 가지도 않고, 마음을 다른 데 두었다고 해서 멈추어 주지도 않는다.
다섯 시가 되고, 여섯 시가 된다. 퇴근하는 사람들의 의자가 하나씩 비워진다.
결과는 오지 않았는데 하루의 한 부분은 이미 끝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 들른다. 우유를 사고, 떨어진 세제를 하나 집는다. 계산대 앞에서 잠깐 줄을 선다. 집에 도착하면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는다.
밥을 먹고, 접시를 씻고, 세탁기가 끝났다는 소리에 빨래를 꺼낸다.
사람은 기다리는 동안에도 배가 고프고, 양말은 세탁해야 하고, 쓰레기는 버려야 한다.
이 평범함이 때로는 낯설다. 내가 기다리는 일이 이렇게 큰데 세상은 왜 아무렇지 않게 저녁이 되는지.
그러면서도 바로 그 평범함 때문에 하루를 건너기도 한다.
컵 하나를 씻고, 젖은 수건을 널고, 내일 입을 옷을 꺼내 놓는 동안에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다.
완전히 잊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것만이 전부인 사람으로 살지 않는 시간이 조금 생긴다.
어떤 기다림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남아 있기도 하다.
보내야 할 것을 보내고, 확인할 것은 확인한다. 물어야 할 때가 되면 묻는다. 혼자 들고 있기 어려운 일은 누군가에게 말하기도 한다.
그래도 그 다음은 다시 내 손 밖에 놓인다.
바로 그 지점에서 '아직'이라는 말이 돌아온다.
저녁이 깊어지면 낮보다 조금 조용해진다.
낮에는 할 일이 '아직'을 자주 덮어 주었는데, 밤에는 빈자리가 넓어진다.
책을 몇 장 읽다가 같은 문장을 다시 읽는다. 영상 하나를 틀어 놓고도 내용이 잘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아침부터 지금까지 꽤 많은 일이 지나갔다.
밥을 먹었다. 누군가의 말을 들었다. 해야 할 일을 조금 했다. 잠깐 웃기도 했다. 피곤해졌다.
그리고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
이 둘은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기다리는 중이라는 사실과 오늘 하루를 살았다는 사실.
어떤 밤에는 기도가 길지 않다.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 있다가 겨우 한마디만 남기도 한다.
아직이네요.
그 말 뒤에 금세 평안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정돈되지 않는 밤도 있고, 내일 아침이면 또 제일 먼저 휴대전화를 확인할 것 같은 밤도 있다.
그래서 '아직'을 아름다운 말로 만들고 싶지는 않다. 기다림이 특별한 사람을 만들어 준다고 서둘러 말하고 싶지도 않다. 오래 기다렸으니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길 것이라고 문장의 끝을 미리 쓰고 싶지도 않다.
우리는 자꾸 '아직' 뒤에 괄호를 붙이고 싶어 한다.
아직, 곧. 아직, 조금만 더. 아직, 결국은 잘될 거야.
하지만 어떤 하루는 괄호 없이 끝난다.
아직. 그것뿐이다.
밤이 늦으면 휴대전화를 충전기에 꽂는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불을 끈다.
기다리던 소식은 오늘 오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이미 지나왔다.
아침의 물 끓는 소리에서 시작해 저녁의 세탁기 소리까지, 해결되지 않은 질문을 품은 채 하루 하나가 살았다.
내일 무엇이 올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서 오늘 밤에는 결말을 만들지 않는다.
침대 옆 어두운 화면 위에, 오늘의 마지막 말 하나만 조용히 놓아 둔다.
아직.
